‘用神과 喜神, 相神에 대한 바른 이해’
리뷰 GAP 특강 -3 ‘用神과 喜神, 相神에 대한 바른 이해’
오늘날 命理學의 지식 체계가 難澁(난삽)하게 된 주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첫째로 用神에 대한 정의와 인식의 부재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 體神과 用神 분별
用神(歲運) |
體의 體 |
體의 用 |
用의 體 |
用의 用 |
格局 (用神) |
喜神 (相神) |
用神 (扶抑用神) |
喜神 (扶抑用神生助) |
위 그림을 살피면 ‘用神’의 의미가 ① 體神에서 格局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 體神에서 ‘體의 用’이 되는 喜神(相神)을 뜻하기도 하며, ③ 오른편 用神의 영역에 속하는 扶抑用神이나 ‘用의 用’이 되는 喜神을 일컫는 말이 되기도 한다. 모두가 用神을 입에 담지만 각자가 생각하고 지칭하는 用神의 글자가 다르다. 이것이 보통 문젠가.
다행히 ‘徐樂吾’는 格局用神과 扶抑用神은 대강의 體用을 구분하였지만, ‘체의 용’이 되는 相神(喜神)과 扶抑喜神群은 구별해두지 못했다. 八字에 따라 相神의 글자와 扶抑用神, 혹은 喜神이 동일한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命例에 대한 ‘徐樂吾’의 해석은 명쾌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徐樂吾’의 評註는 다소 번잡해진다.
가령 亥月生 丁日干으로 壬水가 透한 正官格을 甲木 印綬로 順用하게 되면 正官佩印으로 成格된다. 이렇게 格局을 成格시킨 甲의 글자는 相神인 동시에 ‘徐樂吾’가 칭하는 ‘扶抑用神’의 글자로 일치한다. 반면 寅月生의 丁日干으로 順用의 格局인 印格이라면, 庚金 財의 글자를 보아 印綬用財로 成格되기 쉽다. 그런데 이때 七殺 癸水가 透하면, 命式이 다시 破格이 되므로 格局을 傷하게 한다. 이같은 命式은 대개 身旺하므로 일반 扶抑論者는 보통 庚金과 癸水를 모두 喜神群으로 삼아 命式의 배합이 적합해지는 중요한 글자로 삼겠지만, ‘子平眞詮’은 格局을 파괴하는 癸水의 출현을 극도로 꺼린다. 이와 같이 癸水 하나의 글자를 두고 喜忌의 시각차가 상이한 입장에 대하여 ‘徐樂吾’는 매끄러운 설명을 하지 못했다.
甲丁○壬 ○丁庚癸
○○亥○ ○○寅○
따라서 후대에 ‘子平眞詮評註’의 충실한 학습자들은 일반적인 扶抑用神論者들과는 구분이 되는 이론체계를 갖추었지만, ‘相神=喜神’이라는 혼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더욱이 정통 格局論者로 분류되는 유파들이 ‘徐樂吾’의 논리를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사태를 낳기도 했다. 최근에 格局論者들은 格局의 順用之神이나 逆用之神이 되는 喜神, 相神의 글자에 포커스를 맞추어 매년의 成敗를 논단하는 관점을 취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體神의 글자인 相神을 用神의 영역인 歲運의 喜忌를 가리는 근거로 삼는 것은 아직 體用의 분별이 확고하지 못하는 바에 연유한다. 扶抑用神을 중심으로 喜神群에 속하는 喜神의 글자와 體神, 格局의 用이 되는 相神의 글자를 동일시하는 혼동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扶抑用神의 글자로 格局의 成敗와 大運의 喜忌를 판단하는 일반적인 扶抑論者들이 최근 주종을 이루는데 이는 ‘阿附泰山(아부태산)’식의 설익은 논법에 불과하다. 보통 體用의 奧義(오의)에 접근하지 못한 채 ‘滴天髓’를 단편적으로 학습하면 이와 같은 어설픈 術客이 되기 십상이다. 실제 현상에 대한 예측의 적중률이 십중팔구 빗나가기 일쑤다.
■ 喜神, 相神과 扶抑用神(用神) 분별
日 |
|
用神 | |
庚 |
丁 |
甲 |
癸 |
子 |
卯 |
寅 |
酉 |
1. 格局用神은 月支 寅木으로 印綬格, ‘體神의 영역’에서 일컫는 用神은 곧 格局을 의미함
2. 印綬用財로 財星 庚金이 相神, ‘體神의 영역’에서 일컫는 喜(用)神은 相神을 의미함
3. 透出한 七殺 癸水는 破格의 요인이 되어 忌神, ‘體神의 영역’에서 일컫는 忌神은 格局을 파괴하는 글자임.
4. 身旺命으로 七殺 癸水 用神, ‘用神의 영역’에서 일컫는 用神은 扶抑用神을 의미함
此命의 경우 일단 印綬用財로 成格되는 命이다. ‘相神’의 정의는 格局을 成格시키는 글자를 말하므로 庚金이 相神이다. 이렇게 成格된 命式에 다시 七殺이 透하여 破格으로 변한다. 財星으로 印星을 剋해야 하는 四柱에서는 같은 印綬格이라도 七殺을 꺼리게 된다. 이것은 成格이 破格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癸水를 合去하는 戊土 運을 만나면 어떨까. 바로 이 같은 경우를 가리켜 運에 의해 재차 成格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癸水는 扶抑用神이 아닌가. 用神을 合去하는 運을 보통 最忌運이라 해서 당해의 敗業을 예측하기 마련인데 바로 이 대목이 혼란의 분기가 된다.
결론을 말하겠다. 子平眞詮의 原詩가 말하는 喜用神은 모두 體神의 영역, 즉 ‘命式 원국과 大運’에서 운용되는 글자로 한정되어 사용된다. 반면 扶抑法의 이론 체계에 기반한 扶抑用神의 글자는 매년의 成敗를 조망하는 用神의 영역, 즉 歲運의 영역에서 주체로 활용되는 것이다. 즉 大運에서 戊土 運은 格局을 成格시키는 최선의 運인 반면, 歲運에서 戊土 年은 官祿이 붕괴되는 최악의 運이 된다. 바로 이 차이가 體用을 분별하는 命理 학습의 원칙이 된다.
★ 大運은 格局의 成敗를 판단하는 틀로 운용하고, 歲運은 대개 扶抑法의 코드에 의해 당해의 成敗를 조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歲運에서도 戊土 運이 格局을 成格시켜 좋다고 판단하는 格局論者나 大運에서도 戊土 運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는 일반적인 用神論者는 모두 體用의 구분이 없는 잘못된 학습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徐樂吾’가 ‘滴天髓補註’에서 당대에 가장 체계화된 體用의 분류를 기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이 같은 차이를 명백하게 구분하지 못했다. ‘張耀文’이 최근의 인사들을 두고 『用神을 喜神이라고 생각하는 답답한 자들이 있다』고 질타한 대목은 다분히 ‘徐樂吾’와 그 추종자들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애매모호한 발언에 그쳤으므로 ‘鲍黎明’과 같은 평이한 학인의 반론에 ‘佐藤六龍(좌등육룡)`과 같은 제자 군의 명확한 해명이 따르지 못했다. 내가 대략 透派의 최근 저술 모두를 살핀 결과 해당 문파의 학문 경계나 실전 용법에서 아직 體用의 명백한 구분을 해두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 用神과 喜神 구분
用 |
用神 |
喜神 |
用神 |
喜神 |
格局 |
相神 |
扶抑用神 |
扶抑喜神 |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子平一得’의 ‘論富命’에 ‘徐樂吾’가 자신의 命式에 대해 언급해 둔 바와 각 유파의 견해를 간략히 비교해보겠다.
丙丙壬丙
申申辰戌
申辰會局而透壬水爲用也 用煞必須食制 或用印化 無如日元不旺 忌食傷洩氣
是制之不能也 辰中乙木 餘氣微弱 是化之無力也 力不能制德 不能化.
若見財星 卽破印洩食 黨煞功身 前行申運 已見一班.
『申辰會局에 壬水가 透했으니 壬을 用神으로 삼는다. 살격으로 마땅히 食神으로 制하던지, 혹은 印綬로 化殺해야 하지만 日元이 旺하지 않으므로 食傷의 洩氣를 기피하고 억제가 불가능하다. 辰중에 乙木이 餘氣로서 미약한데 化殺하기에는 無力하다. 七殺을 제어하는 德도 없고, 化殺도 불가능하다. 만약 財星을 보게 되면 印綬를 파괴하고 食神을 洩氣하니 七殺의 무리가 더욱 공세를 취하게 되니 申運 전반에 이미 그러한 상황이 나타났다』
四柱學의 大家, ‘徐樂吾’는 이같이 자신의 命에 대해 냉정하고 확고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子平一得’에서 언급한 내용은 ‘格局論者’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식이다.
근자에 내가 국내의 어느 학인이 ‘子平一得’을 강론한 교재를 우연히 입수하여 보게 되었는데, 그 첫 대목부터 『申辰會局而透壬水爲用也』의 구절을 두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해당 저자의 견해를 덧붙인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강의 취지가 『壬水가 透干해서 用神으로 정한다는 것』이 논리가 정연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무릇 用神이란 格을 정하고 난 뒤에 후차적으로 정해야하는데 用神부터 정하니 순서가 맞지 않는다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대다수의 命理學家들이 이런 식의 내용으로 後學을 지도한다면 문제가 적지 않다. 壬水가 用神이자 格局으로 정해지는 바는 前述한 ‘體神의 用神’을 일컫는 것인데, ‘用神의 用神’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바는 재고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다음으로 『참 用神(아마도 眞神을 뜻하는 듯함)이 暗藏된 四柱의 주인공으로 씁쓸함을 느꼈을 법하다』는 감정이입까지 덧붙여 『食傷은 멀고 偏財는 가까우니』 이로 인해 스스로의 작품보다는 評註를 내는 게 더 많았던 모양이라는 논평을 접하기도 했는데 그 같은 평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偏財로 재편집을 하고, 偏官으로 남의 편의를 위해 정리한 것 같다는 논리적 비약이나 ‘徐樂吾’의 설명이 조리 정연하지 못하고 해설의 논리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 같다는 식의 약평은 마치 소주잔으로 포도주잔을 덮어 평가하려는 객쩍은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六神의 배열을 가지고 심리적인 단편을 묘사하는 내용은 아직 별도로 검증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예측의 주가 되는 八字術의 본류와는 거리가 있는 잡설에 불과하다. 사학계에는 先學의 학문적 업적에 제대로 된 비판을 가하는 학자의 예봉, 보다 발전적인 시각의 피력 등이 필요하다. 아무튼 話者는 辰중 乙木을 用神으로 판단하고, ‘徐樂吾’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여 우울한 심정이 되었을 것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은 ‘子平一得’에서 ‘徐樂吾’가 자신의 命式을 두고 用神을 뚜렷이 정해둔 바가 없다는 점이다. 다만 食神의 제어도 不可하고, 印綬의 化殺도 여의치 않다는 관점을 밝힌 것에 불과하다. 즉 黨煞功身(당살공신)의 凶義만 정의했을 뿐, 하나의 用神을 정하지는 않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體神의 범주에서 殺格을 成格시키려면 ① 殺用食制 ② 殺格用印 ③ 殺格逢刃의 세 가지 용법이 있는데 어느 것 하나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徐樂吾’는 八字 원국에서 用神(후대의 학자들이 마음대로 규정한 扶抑用神과는 개념이 다른 體神의 用)을 정하지 못하고 大運의 의해 格局이 변하는 ‘行運成格變格’의 ‘子平眞詮’ 시각에 충실하여 자신의 命을 관조해보았을 것이다.
한편 ‘造化元鑰評註’에서는 스스로의 命을 두고 평하기를 壬水은 透했지만 甲木이 없는 것(壬甲兩透,科甲定宜)으로 格을 낮추었다. 地支에 辰戌 土局이 있는데 申宮의 庚金이 土를 洩하여 壬水를 生助하므로 財가 黨殺하여 剋身하니 凶하다는 정의를 내리고 있다. 또한 辰月 丙火가 地支에 水局을 이루면 壬水를 취하지 않으며 이때는 반드시 戊土로 用神을 삼고, 富貴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때 戊土로 壬水를 制하려면 반드시 身旺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그는 戊戌 大運 또한 쓸 수 없으며 이 大運 중에 壽命이 멈출 것임을 추리했는데, 그 원인으로 戊土의 조열함을 거론한 대목은 다소 의외라 할 수 있다.
정리해보자. 먼저 理法的인 측면에서 ‘徐樂吾’는 자신의 命式을 두고 ‘子平眞詮`의 관법에 충실한 접근으로 단번에 格局用神을 정했지만 취할 수가 없었고, 扶抑用神은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格局의 成敗를 규정하는 相神에 대해서는 확실히 해두지 않았다. 殺格은 逆用의 格局으로 마땅히 食神 戌土를 相神으로 정해야 하지만, 그는 身弱命에 食神을 쓸 수 없다는 관점을 취한 것이다(無如日元不旺, 忌食傷洩氣). 따라서 그는 食傷의 洩氣를 기피하므로 ‘戌土는 忌神’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 體神의 입장에서 忌神은 格局과 相神을 파괴하는 글자를 말한다. 戌土는 用神의 영역에서 忌神이 될 수는 있지만 體神의 입장에서는 相神으로 보는 게 마땅하다. 엄밀히 따지면 透한 天干이나 地支의 會局을 이루지 못한 이상 相神을 거론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徐樂吾’는 扶抑用神의 범주를 用의 영역에 한정시키지 않고, 體의 영역까지 포괄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戌土를 相神(體神의 喜神)으로 삼지 못했다. 申金 財는 불리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透하지는 않았다. 젊은 시절인 甲乙運에도 壬甲의 富貴를 크게 실감하거나 현달하지 못했고 지방의 한직에 머문 바는 辰중 乙木 印綬가 無力함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戌土 相神을 파괴하는 運이기 때문이다.
대개 辰중 乙木을 用神으로 보는 인사들이 많은데 이렇게 印綬를 用하여 학문에 정진하고 후세에 전파하였다거나, 또는 用神이 無力해서 당대에 꽃을 피우지 못했다는 식의 이현령비현령식의 견해는 합당치 않다. 객관적으로 ‘徐樂吾’는 자타가 공인하는 命理學의 大家이자, 실제 업적 면에서 비교 대상을 불허한다. 중국의 사상 철학계에서 근대의 가장 저명한 命理學家로 공인된 대학자를 두고 暗藏된 印綬를 用神으로 삼는 것은 八字의 高低를 가리는 命理學의 베이식(Basic) 부재를 뜻한다.
이러한 바는 아마도 ‘徐樂吾’ 가 ‘子平眞詮評註’의 ‘잡기취용법’ 편에서 스스로의 命을 두고 辰중 乙木을 化殺하는 用神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乙木을 취한 논거를 비록 辰月이지만 淸明 절입 이후 1일이 지났으므로 乙木 司令이라는 ‘月令의 分日用事’에 둔 것이다. 이러한 논법은 ‘滴天髓補註’에 여실히 투영되어있는데, 그는 乙木을 用神으로 정하면서 壬水가 戌중 戊土와는 無情하고, 辰중 乙木과는 有情한 관계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종래에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徐樂吾’의 저술을 연대별로 분석하고 그가 매 저술마다 자신의 命를 조망한 각론을 살피면 그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결국에는 ‘子平一得’에서 언급한 黨殺의 凶義만 강조했을 뿐, 乙木에 무게를 두는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 궁극적으로 ‘徐樂吾’式으로 정해진 用神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子平眞詮’이 말하는 用神의 有情, 無情 관계는 運에서 변화가 무쌍하다. ‘滴天髓’가 말하는 格局은 고정되지만, ‘子平眞詮’의 格局은 成格에서 變格으로 변동될 여지가 충분하다. 이 차이를 명백하게 구분하면 한층 성숙한 知命의 단계에 돌입한다.
결론적으로 ‘徐樂吾’ 이론의 아쉬운 한계는 體用의 분별과 理氣法의 혼용, 그리고 刑沖會合의 미완성을 들 수 있다. 만약 그가 단순히 戊 大運의 불리함을 論했다면 身弱命의 食傷 洩氣를 기피하는 기본적인 관법 틀을 유지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壽命을 論하면서 그는 戊土의 燥熱(조열)함이 문제라고 했다. 水局을 이룬 命式에 戊土의 조열함이 문제될 리 만무하다. 戌土에 뿌리를 내리는 戊土운의 기세를 두고 旺神을 剋하는 위험을 論할 수는 없다. ‘子平眞詮評註’에서 설명하였듯이 命理의 변화는 干支의 會合刑沖을 벗어나지 못하므로 戊戌운 중의 변화를 예감하였을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견지하는 지식체계의 틀에 모두 부합되는 ‘當殺剋身’으로 규정하고, 西方 金運의 凶義를 체감하였다.
‘張耀文’은 此命을 두고 ‘滴天髓’, ‘論天干’의 구절을 인용하여 水猖顯節(수창현절)의 命으로 論했다. 辰戌 沖(‘透派’는 半合局을 채용하지 않으며 沖을 우선시함)으로 인해 日干 丙火의 뿌리는 상실되므로 身輕殺旺의 命式으로 日柱를 生扶하는 甲乙과 壬水를 억제하는 戊를 喜神으로 삼는다. ‘劉伯溫’의 본류를 자부하는 ‘明澄派’가 일반 여타의 관법에 비해 비교적 우세를 보이는 바는 ‘運의 喜忌’ 이전에 ‘格局의 高低’를 판별해내는 견고한 틀을 유지하는 점에 근거한다. ‘徐樂吾’가 命理 大家로 부상한 바를 두고 하등 미약한 印綬 乙木으로 논단하는 理法에 국한된 이론의 한계를 노출시키지 않고, 氣論的 차원의 十干 체계로 수월하게 풀이해낸다. 한마디로 丙火는 壬水의 剋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水滄(수창)해도 節을 顯한다”는 ‘滴天髓’의 丙火 편을 그대로 적용한다. 命理學에 대한 식지 않은 절개와 ‘徐樂吾’의 일관되고 치열한 학풍과 학문적 업적은 결국 壬水가 암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明澄派’의 ‘十干論’은 大運과 歲運의 구분을 두지 않으므로 이것은 엄밀히 體用의 구분이 없는 것임을 뜻한다. 본래 十干論이나 十干用神은 體神의 영역에서 활용되는 게 정법이므로 ‘明澄派(透派)’가 견지하는 十干論은 단편적이고 획일적인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